백지위임장이 왜 위험하냐고 하면, 사실 이유는 아주 단순한데… 막상 실제 상황에서는 이게 얼마나 큰 문제로 번지는지 잘 체감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내용이 비어 있는데 서명만 해둔 문서라는 게, 생각보다 무섭거든요. 빈칸을 누가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내 의사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 ‘내가 맡긴 것처럼’ 꾸며질 수 있어서 그래요.
위임장은 보통 어떤 일을 누구에게, 어느 정도 범위까지 맡긴다는 걸 명확하게 적어두는 문서잖아요. 그런데 백지위임장은 그 중요한 부분이 비어 있으니까, 상대방이 마음만 먹으면 그 안에 무슨 내용을 넣어도 모양새가 성립돼요. 겉보기에는 내가 전부 동의한 것처럼 보여버리는 거죠. 나중에 “그런 내용은 위임한 적 없다”고 말해도 이미 서명된 문서가 있으니 설명이 꼬이고, 증명하기도 어렵고요.
특히 부동산, 금융, 소송, 회사 관련 문서처럼 법적 효력이 큰 분야에서는 백지위임장이 정말 위험해요. 의도하지 않은 계약이 체결되거나, 내 권한을 넘기는 범위가 터무니없이 넓게 적혀도, 내가 사전에 통제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문제는 일이 다 벌어진 뒤에야 상황을 알아차린다는 점이에요.
또 한 가지는, 백지위임장은 분쟁이 생겼을 때 증거로도 애매해져요. 정확히 어떤 내용에 동의했는지가 기록돼 있어야 범위를 딱 잘라 설명할 수 있는데, 빈칸 상태로 서명하면 그 기준 자체가 사라지니까요. 그때부터는 말싸움이 되고, 그 과정에서 내가 더 불리해질 가능성이 커요.
그래서 위임장을 쓸 때는 어떤 일을, 언제까지, 어느 범위로 맡기는지 꼭 채워넣고 확인한 다음 서명하는 게 가장 안전해요. 작은 일이어도 빈칸이 보이면 그냥 넘기지 않는 게 좋고요. 결국 백지위임장은 ‘내가 싸인한 빈 계약서’나 다름없어서, 애초에 만들지 않는 게 제일 안전하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