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슬라이스는 잘못된 구질이라고 여기지만, 사실은 고의로 구사하면 굉장히 유용한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투어 프로들도 페이드샷을 즐겨 쓰는데, 사실상 컨트롤된 슬라이스라고 보면 되거든요. 이걸 전략적으로 활용하려면 우선 내가 의도적으로 구질을 만들 수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고, 그다음으로는 어떤 상황에서 이걸 쓰면 효과적인지를 아는 게 중요합니다.
첫 번째로 가장 대표적인 상황은 도그레그 홀이 오른쪽으로 꺾여 있을 때입니다. 티샷을 똑바로 보내면 러프나 해저드로 빠질 위험이 있는데, 이럴 때 드로우보다는 컨트롤된 슬라이스를 날려서 오른쪽으로 휘게 만들면 안전하게 페어웨이에 안착시킬 수 있습니다. 특히 슬라이스는 구질 특성상 공이 왼쪽으로 많이 출발하지 않고 오른쪽으로 천천히 휘기 때문에 도그레그 우측 홀에는 잘 맞습니다.
두 번째는 장애물이 걸리는 상황입니다. 앞쪽 나무나 벙커, 워터해저드 등 피해야 할 장애물이 타깃의 왼쪽에 있을 경우, 오른쪽으로 휘는 구질로 시야를 확보해 보내는 게 효과적입니다. 물론 이때는 자신 있는 페이드샷이 필요하고, 클럽 페이스와 스윙 궤도를 어느 정도 정교하게 조절해야 하긴 합니다.
세 번째는 바람을 역이용하는 상황입니다. 바람이 왼쪽에서 불고 있을 때 페이드 구질로 날리면 공이 떠오른 뒤 바람을 타고 떨어지면서 정확한 타깃으로 가게 만들 수 있습니다. 슬라이스성 구질은 드로우보다 낙하 지점이 예측하기 쉬운 편이어서 바람을 이용해 조절할 때 안정감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런을 줄이고 싶을 때입니다. 드로우는 공이 굴러가는 런이 길어지지만, 슬라이스 계열 구질은 스핀이 많고 낙하각이 커서 런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정확한 거리를 맞추거나 그린을 직접 공략할 때는 의도적인 슬라이스 샷이 오히려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좁은 그린, 앞뒤가 해저드인 경우엔 아주 유용합니다.
결국 슬라이스도 ‘제대로 날리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본인이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슬라이스가 나오는 거고요. 그건 스윙 궤도나 페이스 방향을 점검해야 할 영역이고, 반대로 ‘슬라이스를 칠 수 있는 능력’은 활용 가치가 분명히 있는 기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